스물 둘의 사랑 <퀴어가이드 11호 발췌>

그 애를 본 순간 나는 그 애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탐스러운 머릿결, 아이처럼 동공이 크고 가늘게 찢어진 눈, 오똑한 콧날에 메마른 입술까지 … 그 애는 가늘고 우아한 목선과 왜소한 어깨로 흘러내리듯 가느다란 팔을 앙증맞게 흔들며 캠퍼스 이곳 저곳을 분주히 뛰어다녔다. 아직 자신 없는 자기자신과 남들의 시선에 불안해하며 움츠러드는 그 애를 보면 “걱정하지마 내가 도와줄게.” 하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고등학교 때 지독한 짝사랑을 삼 년하고 진력이 난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한동안 술에 절어 방황하며 지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게이 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난생 처음 게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애를 만난 건 그 쪽 모임에 나간 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술집에서 별 마음에 없는 사람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얘기를 허락없이 주고받으며 따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 한 남자애가 쭈뼛쭈뼛 어색하고 민망한 표정으로 술집으로 들어오더니 한참을 문가에 서 있었다. 이상하게 그런 게 더 잘 보였다. 그 애는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잠시 뒤에 우리 쪽 모임 주최자가 그 애 쪽으로 다가가서 그 애를 데려왔다.

딱 봐도 이런 모임이 처음인 것 같았고, 때 묻지 않은 순순함 같은 게 느껴졌다. 모임 주최자는 신입이라면서 그 애를 자기 쪽으로 데려가서 한참이나 떠들면서 술게임을 하고 놀았다. 그 애는 한참이나 어색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애가 자꾸 눈에 들었다. 나는 자리가 파하고 나서야 혼자있는 그 애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했다. ” 네 안녕하세요.”

“술 많이 마셨나 봐요.” 그 애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손으로 술 마시는 시늉을 하며 다시 말했다.

“네 좀.. 이런 데는 처음이라”

취했는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게 좀 귀여워 보였다.

“몇 살 이세요?”

“전 스물 둘이요.”

“아 나돈데. 번호나 교환해요 그럼.”

나는 게이들 앞에서 좀 긴장하는 성격인데도 이상하게도 그 애 앞에서는 편했다. 애는 집에 가야 돼서 지하철역으로 간다고 했다. 나도 집으로 갈 거라고 그랬다.

“너는 무슨 역으로 가는 데?” 그 애가 물었다.

“나는 안암역으로 가려고.”

“고대 다녀?”

우리가 같은 학교란 걸 확인했을 때, 나는 웬지 운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의 이름은 연.호.였다. 보들보들한 피부와 순수한 미소에 꼭 들어맞는 이름인 이.연.호.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그애를 보면서 늘 감탄했다.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하루가 설레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마침 둘 다 이쪽 친구가 없는데다, 성격도 비슷해서 우린 금방 친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나와 같은 종(種)이 세상에 또 있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시험기간에도 우리는 함께 공부했다. 그 애가 열람실이 답다하다고 통 난리를 부리는 통에, 우린 학교 근처의 기린이란 카페에서 공부하곤 했다.

테이블 아래로 은근슬쩍 그애와 신발을 맞대고 있으면 기분이 황홀해졌다. 무심히 우연히 발이 닿는 냥 했지만, 묘하게 형성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애도 피하지 않았다. 그 애는 예쁜 글씨로 가지런히 정리한 노트를 앞에서, 머리를 까우뚱하며 공부를 했다. 그 애가 나를 힐긋 올려다보기에 ‘흐흐’하는 미소를 지어줬더니, “아 못 볼 거 봤다.”하고 혀를 쏙 내밀며 발을 자기 쪽으로 집어 넣어버렷다. 내가 다시 그 쪽으로 발을 밀어 넣었지만, 연호는 사람들 시선에 신경 쓰인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한 시간만 더 하고 들어가자.”

연호는 내 노트에 이렇게 쓰고는 정작 이십분을 못 넘기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밖에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두터운 외투를 껴입은 커플들이 연신 하얀 김을 내뱉으며 어디론가 분주히 움직였다. 우리도 내 방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어가며 서로 어깨가 자주 부딪히곤 했다. 이렇게 어깨가 부딪히거나, 손등이 스치거나, 버스에 나란히 앉아 몸이 맞닿으면 아랫도리가 불룩해지곤 했다. 흥건히 젖은 팬티를 세탁물 통에 던져 넣으며 이런 걸 흘린 거라고 하는 구나 실감했다.

문을 열자 뜨끈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연호는 자기 방처럼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 그 애는 천진하게 “뭐 먹을 거 없어?” 하고 보챘다.

냄비에 물을 넣고 가스렌지에 올려놓자 얼마 뒤에 부글부글 물 끓는 소리가 났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냄비에 면과 스프를 넣었다. 언제나 혼자이던 내방에 사람 냄새가 들어 좋았다. 상을 펴고 “앗 뜨거 앗 드거”하며, 라면을 냄비 받침대 위에 올려놓는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면발을 연호의 앞 접시에 한 술, 내 앞 접시에 한 술 나른다. 신혼살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일 시험이지? 오늘 내 방에서 자고 가.”

“나 잡아먹으려고.”

“변태냐”

나는 늘 호감을 빈정거리듯 돌려 말하곤 했다. 원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언제부터였나 자연스러운 호감을 표현하는게 불편해졌다. 그건 아마 힘겨운 지난 짝사랑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애가 나에게 “너 혹시 호모냐?” 라고 묻는 순간, 그때부터 사랑의 언어는 내게 금기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 저번에 번호 따간 애가 나 좋아한다고 얘기했어.”

“그래서 같이 자게?”

나는 아직 국물이 남은 냄비에 수저와 접시를 넣으며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연호는 응석받이였다. 모범생이라는 가면아래 가려진, 제멋대로이고 치기어린 구석을 내 앞에선 순순히 드러냈다. 그 모습이 낯설지는 않았다. 어쩜 그 애 앞에서 내 모습이 그랬을 수도 있으니까. 고등학교 시절, 또래보다 조숙하고 준수한 남자애엿던 그 애와 있으면 내가 어리게 느꺄지곤 해서, 은연중에 마음을 기대고 친구 이상의 것을 바라곤 했다. 우정이란 감정이 선을 넘어버리는 건 부지불식간이었다. 그 애가 다른 친구와 있으면 마음이 상하고, 괜히 어린 마음에 신경질을 부리고 관계를 시험하려 했다. “너 혹시 호모냐?” 복도에서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컹하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서웠다. 나는 황급히 내 마음을 묻어버렸다. 그때 당황하던 내 표정이 얼마나 혐오스러웠을지,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연호와 함께 있으면 남자가 된 것처럼 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꾸 까불면 따먹는다.”

연호는 원숭이처럼 입을 쑥 배고는 비켜 비켜, 하며 바닥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그 애는 턱을 괴고 콧노래를 부르며 책을 보았다. 나를 희롱하는 듯 했다. 나는 그 옆에 누워 다른 책을 보았다. 그 애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아이”하며 몸을 비틀었다.

“어우 같은 놈.”

연호는 나를 놀리듯이 고개를 흔들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어느 틈엔가 이불 속에서 “잠깐만”하더니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불을 껐다.

새벽에 눈을 뜨니 연호는 몸을 웅크리고 내 쪽으로 고개를 묻고 자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그 애의 향기를 슬쩍 맡아보곤 다시 누웠다. 간질간질 거리며 막 무언가 솟아날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알람 소리가 울릴 때까지 기묘한 감각의 세계 속에 머물렀다.

한 숨도 못 잤는데도 이상하게 졸리지 않았다. 연호를 흔들어 깨우자 연호는 “응”하고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연호를 깨우기 위해서 그 애의 몸을 들어 올린것이 화근이었다. “일어나야지”하고 그 애의 겨들랑이 안으로 손을 넣고 들어올리는 순간 그 애의 몸이 내 품에 쏙 들어오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그 애의 입술을 덮쳤다. 그 애가 눈을 똥그랗게 뜨곤 포획된 야생동물처럼 몸을 푸드득 떨었다. 한번 시작한 이상 멈춰지지 않았다.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내 몸은 정신없애 그 애를 탐하고 있는데, 내 의식은 몸에서 약간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입안으로 혀를 넣어 몇 번 굴리고, 그 애의 셔츠에 손을 넣어 민감한 부분을 만졌다. 야동에서 본 것처럼, 그 애를 눕히고 벨트를 풀러 바지를 벗기고 팬티를 끌어내렸다. 그 애의 아랫도리를 애무했다. 조금 더럽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서툰 것처럼 하면 안 될 것 같아 계속 했다. 그 애는 내 어깨를 잡고 눈을 질끈 감으며, 알 수 없는 신음을 내질렀다 그 애의 윗도리를 마저 벗기고, 내 옷도 벗자 우리는 실오라기 하나 없이 서로의 몸을 밀착할 수 있었다. 그 애를 끌어안고 몸을 부비고 더듬으며 그 애와 하나가 되려고 애썼다. 그 애 위에 올라타서 내 물건을 들이밀자 흔들어주었다. 사정을 하고 휴지로 그 애의 얼굴과 가슴을 닦아 주었다. 나도 해주겠다고 하니까 그 애는 됐다고 하며 씻으러 갔다.

나는 잠깐 멍하게 있다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좀 전의 그 애가 나체로 욕실 문을 열고 수건을 달라고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 애의 벗은 몸이었는데도.

“나 혼자서 갈게.”

내 배웅을 거절하고 그 애는 홀로 방을 나섰다. 길어지는 그림자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첫경험은 얼떨떨했다. 생각만큼 황홀하지 않았고, 이렇게 동정을 때는가 싶었다. 그 애를 손에 넣은 거라고 할 수 있을까? 배갯잎에 얼굴을 묻고 그 애의 남은 흔적을 느끼는 데 전화가 울렸다. 연호였다.

“재준아, 너네 방에 계산기 두고 간 거 같은 데 혹시 있어? 오늘 시험 칠 때 필요해서.”

“응 잠깐만. 시험이 언젠데?”

“십분 뒤에”

이불을 걷어치우고 책상을 헤집어 가며 뒤져보았지만 계산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대충 옷을 챙겨 입고 학교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계산기를 사서 강의실로 다시 뛰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애를 찾아가자 그 애는 제법 감동받은 얼굴로 “없으면 그냥 다른 애 꺼 빌리면 되는데…” 하고 고마워했다.

“너 다른 애들한테 부탁 잘 못하잖아.”

연호는 다른 애들에게는 부탁을 잘 못하는 편이었다. 부탁뿐만 아니라 거절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늘 손해 보는 것 같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애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편하게 되는 건 싫었다. 그 애가 나를 만나 더 성장하고 잘 되길 바라면서도, 그럼 나를 버리고 갈까 봐, 언제까지나 철부지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이 늘 교차하곤 했다.

다음 날도 시험이 있었다. 연호는 또 내 방으로 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가끔 허리를 비틀거나,  한 손으로 어깨나 등을 긁을 뿐 별 미동도 말도 없었다. 먼저 시험이 끝난 나는 소설책을 읽고 있었지만 글자가 별로 눈에 들지 않았다. 그 애가 공부하는 모습을 힐긋힐긋 쳐다보며 ‘어제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될까?’ 하는 기대 섞인 마음으로 눈치를 살폈다. 그러면서도 어제 내 실력에 실망해서 거절당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별 대화가 흐르지 않는 적막함 속에서 연호는 새벽 세 시 즈음 공부를 마쳤다.

연호가 일곱 시에 깨워달라고 해서, 알람을 맞춰두고 누엇다. 연호는 피곤했는지 가늘게 코를 골며 잤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자고 있는 그 애를 보았다. 창문너머로 새어 나온 가로등 불빛이 그 애의 얼굴에 반사됐다. 버선코처럼 오똑하게 솟은 그 애의 코와 살짝 벌린 도톰한 입술을 눈으로 쓸어 내렸다. 이불 안에서 한 손을 꺼내서 그 애를 안아보았다. 그 애가 호흡하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머물고 있자, 불편했는지 그 애가 몸을 뒤척였다.

방안 가득 그 애의 향기가 아른아른 했다. 부풀어 오른 내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만지작거리면서, 화장실을 다녀올까 고민했다. 정신을 차리려고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연호가 그 기척이 깼는지 몸을 뒤척였다. 그 애는 나른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깨 좀 주물러줘.”

그 애는 입고 있던 두터운 스웨터를 벗고 등을 보이며 누웠다. 헝클어진 얇은 면티 사이로 그 애의 속살이 얼핏 얼핏 보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연호의 허리위에 앉아서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어깨에서 팔로, 그리고 다시 등줄기로, 종아리로 내려갔다 다시 엉덩이로 올라와서 그 애의 엉덩이를 만져주었다. 내가 어떤 부분을 눌러줄 때마다 기분이 좋은 듯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나는 그것을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그 애의 바지 앞단에 손을 밀어 넣었다.

“하지마”

그 애가 가볍게 몸을 뒤척였다. 단단해진 그 애의 앞 단에 손을 넣고, 지퍼를 내렸다. 허리춤을 잡고 바지를 종아리까지 내리자, 그 애의 하얗고 가는 다리가 드러났다. 바짓단을 발에서 빼어내고, 그 애의 팬티에 손을 댔다. 팬티를 내리자, 그 애의 보드라운 엉덩이가 드러났다. 나는 한 손으로 한쪽 엉덩이를 주무르며, 입으로 다른 한쪽을 애무했다.

“더러운데.”

“아냐, 맛있어.”

그 애의 등에 손을 넣어 남은 셔츠를 마저 벗기고, 그 애의 귀를 빨며 가슴을 쓸어올렸다. 그 애가 몸을 비틀었다. 그 애의 다리 사이에 내 다리를 넣어 그 애를 감쌌다. 그러곤 그 애의 입술을 훔치며, 달아오른 아랫도리를 만졌다.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관능이 깨어났다. 섹스에 대한 긴장과 그 애의 수치심을 깨버리려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그 애를 유린하던 것처럼 노골적으로 그 애의 몸을 탐했다.

연오의 얼굴에 사정을 하고 정액을 얼굴이 문지르지 그 애가 인상을 쓰며 “빨리 닦아줘.” 라고 했다. 휴지로 그 애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비로소 그 애를 정복한 기분이 들었다. 나느 그 애를 뒤에서 안으면서 그 애의 물건을 흔들었다. 가슴을 문지르면서 손을 빠르게 흔들자 그 애가 단발마의 신음을 지르며 사정을 했다. 연호는 휴지로 자기 껄 닦고는 바로 욕실로 향했다. 나는 손에 묻은 그애의 정액을 닦았다. 욕실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옷을 입었다.

연호는 벌거벗은 채로 욕실에서 나왔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방으로 들어오더니, 침대 주변에 있는 자기 옷을 챙겨 입었다. 나는 침대에 턱을 괴고 누워서 연호가 옷 입는 것을 바라보았다.

“너도 처음이지?” 집을 나서며 연호가 물었다.

“응.”

“생각보다 별 거 없네.”

“다 그렇지 뭐.”

겨울 아침 공기는 차가웠다. 우리는 별 말 없이 걸었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그 애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연호는 내 방에 자주 다녀갔고, 그럴 때마다 짙은 애무와 섹스를 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 관계가 일정 선을 넘어 가까워질라치면 그 애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그렇게 밀고 당기기가 계속 되었다. 좋아한다는 말이 몇 번이나 입가에서 맴돌았지만 어쩐지 입 밖에서 턱턱 막혀서 말하지 못했다. 좋아한다고 말 해버리면 예전과 같은 상처를 입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러는 사이 학기가 바뀌었다. 그 애는 취업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바빠졌다. 처음에 이 쪽 술집을 나올 때 눈치를 살피며 어색하게 웃던 그 아이는 발을 점점 넓혀갔고 게이 친구들도 많아졌다. 그 애는 인기가 좋아서 술자리에 가면 늘 번호가 따이곤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동정 행세를 했다. 그럴 때마다 질투가 치밀었지만, 우리 관계를 따져 물을 용기는 내지 못했다. 가끔 연예가십을 읽다가 내연녀 이야기를 볼때면 그게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조바심이 났다. 지금 방황할 수는 있지만 묵묵히 참고 기다리면, 결국엔 나에게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문득 그 애에게 대쉬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은 충동이 밀려들기도 했으며, 나를 갖고 논건가 싶어 울컥하기도 했다. 바보 같은 사랑이라고 해도 그 애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게 분명히지기 전까진 포기 할 수 없었다. 관계의 칼은 그 애가 쥐고 있었다. 그 애를 기다리는 때가 잦아졌다.

그 날도 그 애를 기다리며 새벽을 지새우다가 깜빡 잠에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 다섯 시였고, 그 애는 아직 내 방에 들르지 않았다. 문득 세상이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새벽에 끝날 거 같다더니 아직 안 끝났어?

응 오빠가 좀 바쁘네 ㅎ

응 .. 언능와 ㅠㅠ

그 애는 답이 없었다. 아침 일곱 시가 되어서야 그 애가 내 방에 왔다. 일이 좀 잘 안 풀린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훌렁 벗고 잠을 잤다. 아홉 시에 깨워달라고 했다. 나는 잠깐 눈을 부치고 아홉 시에 그 애를 깨웠다.  하지만 그 애는 일어나지 않았다. 더 깨우면 화 낼 것 같아 내버려뒀다.

“아, 깨우라니까.”

열 한지 즈음, 그 애는 핸드폰을 확인하곤 성질을 부렸다. 신경질적으로 인상을 쓰고는 돌아 누워 다시 잠을 잤다.

칼로 가슴을 애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애는 요즘 내 연락에 답을 늦게 했고, 약속을 잊는 때도 잦았다. 그 애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었지만 그럴수록 그 애는 나를 더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 하려 할수록 더 어긋나고 비틀리는 것 같았다. 지난 사랑의 실패에 대한 기억이 더오르면서 우울함이 밀려들었다. 내 사랑은 늘 이런 것 같고, 나는 사랑 받을 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생각이 의식을 파고들었다. 다시 거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너 호모냐?” 밀착되어 있던 우리 사이를 단칼에 배어낸 그 말이 떠오르며 선명한 공포감이 되살아났다. 나를 구해줄 사람은 오직 그 애 뿐이었다. 고심 끝에 장문의 이메일을 썼다.

그 후로 연호는 내 방을 다녀가지 않았다. 가끔 간헐적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할 뿐이었다. 매일 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의 공기가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그 애에게 내 정체를 들키고 나서의 기간이 겹쳐졌다. 남고의 투박하고 거친 세계 속에서 나는 언제나 좀 긴장되어 있었다. 남자아이들 틈 사이에 있으면 자꾸 숨 쉬는 게 의식되곤 했다. 등교버스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을 때도,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때도 그리고 밥을 먹으려고 줄을 서 있을 때도. 그 애가 내게 장난을 치며 나를 받아 주던 날, 이상하게도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 애를 보면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숨 쉬는 게 의식됐다. 생활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다.

한 동안은 연호에게 연락이 오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내는 날이 계속 되었다. 고통속에서도 그 애를 만나면 좋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 그 애는 내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혹시 내가 괜히 이메일을 보내서, 괜히 집착해서, 괜히 … , 하는 자책이 이어졌다.

학교에서 꽃단장을 한 그 애를 멀리서 본 날이었다. 나는왠지 마음이 불안해서 밤에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신호음이 몇 번 갔다 끊어졌지만, 두어 번 다시 걸자 신호가 울리자마자 전화가 끊겼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등학교 때 그 사건을 겪고 나서 나는 세상에 다시 내팽겨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국인이라는 딱지가 내 등 뒤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주위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는 것처럼 뒤통수가 뜨끔하고 긴장됐다. 나는 숨 쉬는 게 자꾸 의식됐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나는 아웃사이더였다.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애들과 웃고 떠들고 말하면서도 어쩐지 공기가 편하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가까워질 만 하면 스스로 벽을 치게 되었다. 그 느낌은 특히 남자다운 애들과 있을 때면 더욱 그랬다. 게이들을 만나고도 이상하게 편하지 않았는데, 연호를 만나고 나서 비로소 그 느낌은 사라졌다.

그 애를 조금이라도 더 보려면 이 고통을 참아내야 하겠지만, 희망고문은 실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차라리 이 관계가 없던 걸로 되어서, 일말의 희망도 없어져버리는 걸 택하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그 애가 나를 먼저 정리할리는 없었다. 혹시나 이렇게 선택 하는 게, 나중에 잘될 수 있을 일말의 희망을 놓아버리는 것 같아서 고통스러웠지만 생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그 애에게 연락을 했다. 그 애는 받지 않았다.

너네 집으로 가고 있어. 너 올 때까지 기다릴 거니까 일 보고 연락해

그 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애는 전화로 왜 그러냐고 할 말이 있으면 전화로 하라고 했다. 나는 꼭 만나야겠다고 버텼다.

그 날 자정이 다 되어서야 그 애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애 집 근처에 있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그 애는 도대체 왜 자기가 여기에 있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 애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무슨 말 할밀 더 있겠는가. 의미 있는 말은 없었다. 그저 구질구질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후회가 없을까, 하는 말을 쏟아내며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호소할 뿐. 사랑의 말로는 비참했다. 시작할 땐 둘일 것 같았고 그 애를 보며 설레기도, 서로 연인처럼 지내며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었는데, 돌아갈 땐 싸늘한 시선속에 혼자 가는 길이었다. 그 애가 더 멋진 사람이 아니라서 슬펐다. 나의 절망이 그애에겐 그저 성가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서러웠다.

많이 울어 그런지 자리에서 일어날 땐 오히려 후련했다. 그 애가 택시비는 있냐고 물었다. 뒤통수가 당기는 것을 느끼며 도로가로 걸었다. 눈물이 다시 났다. 결국 이렇게 끝날 것이었다. ‘정말 단 한순간도 날 좋아한 적 없었어?’라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이제 내게 다시 사랑은 없는 거라 다짐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택시 앞 좌석에 앉아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택시가 주홍빛 터널을 가로 질렀다.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누워 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문득 눈물이 흐르고 정신 없이 울다가 또 잠을 잤다. 그리고 긴 새벽이 찾아왔다. 식욕도 없어서 밥도 잘 먹지 않았다.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배는 고프지는 않았다. 이대로 죽어버리면 그 애가 날 찾으러 오지 않을까, 나중에 미안하게라도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이렇게 고독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따금 학교에서 그 애를 보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 틈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그 애를 보니 내 가슴이 철렁해서 다가갈 수 없었다. 완전히 남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 애의 아무렇지 않은 웃음 하나에도 가슴이 뒤죽박죽 되는데도, 그 애는 너무 잘 지내는 거 같아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애 다른 남자애와 학교에서 있는 걸 봤다. 한 눈에 그 애 남자친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연호는 나를 보고 알은체하려 했고, 나는 도망가듯이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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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는 아주 압축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는 남들보다 좀 늦게 군대를 다녀왔고 제대해서는 취업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바야흐로 진짜 어른이 되는 것 같았다. 불꽃처럼 일렁이던 성욕은 이제 잠잠해졌고 예전만큼 야한 생각이 잘 나지도 않았다. 가까스로 취업을 하고 나니 서른이었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설 때마다 숨 쉬는 게 의식되곤 했지만, 그런 느낌은 차츰 익숙해졌다. 사람들과 많이 부딪히다 보니 그런지도 모른다. 예전보다 걱정이나 긴장감이 줄었고 사람을 좀 더 깊이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몇 명의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놀랍게도 다들 나를 잘 받아주었다. 받아줄 것 같은 사람에게만 얘기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일은 나에게 많은 위로와 세상에 대한 믿음을 주었고, 예전의 상처를 조금씩 잊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군대 휴가 때마다 잠깐 잠깐 연락하던 게이 동생과 제대 후에 정식으로 사귀게 되었다.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깊고 지혜롭고 현명한 아이였다. 정식으로 사귀기 전 잠깐, 연호를 좀 더 나이 들어서 만났다면 우린 지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 애를 만나면서 생활에 더 안정감이 생겼고 삶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한 날들 속에서도 가끔 연호는 어떻게 지내나 싶어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훔쳐보기도 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가끔 애상에 젖어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연호를 다시 만나게 된 건, 게이 인권단체에서 개최한 ‘서른을 맞은 당신에게’라는 1박 2일 캠프에서였다. 내 애인은 인권단체에서 한 번씩 자원 봉사를 하고 있었고 그런 언유로 나도 같이 참가하게 되었다. 새벽이슬을 맞은 영롱한 사슴 같던 그 애의 가녀린 목에 완연한 주름이 지고, 날렵하던 턱 선도 완만해졌다. 보송하던 피부에는 개기름이 끼었고 소년 같이 불안하고 수줍은 모습도 이제 찾아보기 힘들었다. 능글맞은 서른의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말하거나, 웃을 때 보면 그 애만의 표정에서 옛날 얼굴을 좀 찾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멀찍이서 서로를 힐끗 힐끗 쳐다보았지만 말을 섞지는 않았다. 애인과 함께 있으려니 왠지 그 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프로그램에 참가하지는 않고 멀찍이서 스텝으로 일을 도왔다. 내 쪽으로 다가와서 스킨십을 하려는 애인에게 부끄럽다며 자리를 피했다. 애인에게도, 그 애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별로 흥이 나지 않아 일찍 잤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빨리 보내려고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애인은 내가 기분이 안 좋은걸 눈치 챘는지 나를 더 추궁하지 않고, 고향에 볼 일이 있다며 다른 버스를 타고 갔다. 미안했다.

차는 서울의 어느 도로변에 도착했다. 먼저 내리려고 서로 눈치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다 내릴 때까지 앉아서 기다렸다. 캠프 때 같은 방에서 묶었던 사람이 안 내리냐고, 점심이나 먹자고 했지만 일이 있다고 손사래쳤다.

짐칸에서 캐리어를 꺼내고 괜히 일이 있는 것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캐리어를 살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대로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무너지고 다시 현실로 고꾸라진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무거웠다.

전세버스가 내 앞을 지나가며 매연을 뿜었다. 손을 휘저으며 인상을 쓰는데, 저기 건너편 횡단보도 앞에, 나처럼 핸드폰을 쳐다보고 캐리어를 살펴보며, 깜빡이는 초록불에도 발을 떼지 않고 서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퀴어가이드 11 pp.15-26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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